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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베르 카뮈 ‘이방인’ - 실존주의, 그 속의 ‘나’
    All about me 2021. 3. 8. 16:16

     이방인(L’Etranger) - 알베르 카뮈

     

    1. 알베르 카뮈는? 

     

     1942년 '이방인'이 첫 출간되었을 때, 알베르 카뮈는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로 당당히 올린 소설 ‘이방인’은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이방인이란 낯선 제목처럼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는 내용도 말투도 덤덤하고, 군더더기 없는 서체로 

    조금은 이상하게 첫 문단이 시작된다.

     

    2. 줄거리 

     알제리에서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뫼르소. 그는 교육을 받았지만 신분 상승 욕구나 야심이 없고 생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주위에 무관심한 청년이다. 뫼르소는 어느 날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고, 장례를 치르러 요양원으로 향한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버스 안에서 편히 잠을 자고, 장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은 찾아볼 수 없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에 대한 회고보단 주변인에 대해 관찰하며 그렇게 장례식의 시간을 보낸다. 자식인 뫼르소보다도 어머니의 요양원 친구였던 토마 페레는 쉼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친구를 배웅했다. 장례식 내내 그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식의 모습이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본 일이 없던 나는, 어머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나 혹은 “이제는 드러누워 실컷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다.”는 그의 생각은 조금 충격스러웠다.

     

     다소 충격적이며 이질적이라 생각되는 장례식 장면 뒤로도 계속해서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이어진다.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그는 오래전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정사를 나누고, 영화를 본다. 마리 역시 그의 검은 넥타이를 보고 주저하지만 잠시 후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다시 뫼르소와 어울린다. 그는 이웃인 노인의 개가 맞아 낑낑대는 모습을 봄에 있어서도 아무런 감정 없이 지나치며, 또 다른 이웃인 ‘레몽’이 그에게 상담을 해올 때 그에게 응하나 자신의 의견을 전혀 피력하지 않고, 그저 동조도 반대도 아닌 애매한 태도 어느 하나에도 발을 담그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주변인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주로 “그렇지는 않다”이다.”이다 ‘마리’가 사랑을 갈구하며 그에게 사랑하느냐고 물어도 그는 그저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로서 회피한다. 무채색의 회색과 제일 동일하던 그의 삶은 레몽과 사이가 나쁜 아랍인들과 다툼을 벌이게 됨으로써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화려한 색채로 향하게 된다. 강렬히 눈부신 태양과 찌는 듯한 여름의 열기, 바다 위로 쪼개지는 수 만개의 태양빛, 아랍인이 꺼내 든 칼에 반사된 은광, 그런 것들에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인지하지 못한 사이 권총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쏜 네발의 총성은 그가 느끼기에도 독자들이 느끼기에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 같았다.

     

     아랍인 살해범으로 구금된 뫼르소는 수차례 재판 과정을 거치고, 타인과의 스쳐 지나감을 느끼고, 수많은 생각을 거듭한다. 감옥 속 인생에서 처음으로 신부를 향해 감정을 표출한 뫼르소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고, 차분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라도 한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뫼르소는 마지막에 결국 ‘이방인’이었던 자신의 역할을 재 정의하며 사형을 판결받아 생을 마감하게 된다.

     

    3. 시대적 배경 및 감상

     당시 프랑스 청년들은 카뮈의 이방인에, 뫼르소에 크게 열광했다. 이성주의에 입각해 발전해온 서구는 최고의 이상을 ‘이성’에 의해 판단된 것이라 생각했으며, 모든 것은 ‘이성’적으로 사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대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등을 겪으며 우리는 혼동을 겪는다. 과연 인간의 ‘이성’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 정의란 것이 존재하는가.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카뮈의 이방인에서는 이러한 이상주의를 넘어 실존주의를 드러낸다. 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실존주의 속 인간은 사물과 달리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언제나 공백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실존주의의 대표 사상가 사르트르는 우리의 삶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생은 B(bri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그 어떤 본질 하나 규정되지 않은 채 삶에 내던져진 우리는 사회에 귀속되어 그 굴레에 맞게 살아가게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문을 갖는 순간 그 평화는 깨지고 만다. 카뮈의 뫼르소 역시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다. 재판정의 논리 속에서 인간은 국가와 사회, 역사와 문화에 의해 명확히 규격 된 규범과 도덕으로 규정되는 존재이다. 그저 순응하고 사회에 귀속되어 그들이 원하는 규칙에 맞춰 연기하고, 어머니의 죽음에 슬프지 않았지만 슬픈 척을 하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진 않지만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척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탈하는 자는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재판장은 뫼르소에게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며 사형을 선고한다. 결국, 뫼르소의 모습은 패륜이고, 부적응자이고 저항 및 일탈이라기보다 또 다른 구도의 행위가 아닐까 싶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 일지도 모르나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은 모두 흑백의 논리로 정해지고, 정답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 해 두해 조금씩 자라게 된 나는 세상은 언제나 흑과 백 두 가지의 논리로 정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간관 계속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말이다. 나의 작은 세상에서는 명확히 보이고 판단 가능했던 이분법적 사고가 점점 세상이 커감에 따라 적용될 수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속임수와 눈가림 속에서 옳은 것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게끔, 나 자신을 오롯이 설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나의 주관과 신념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삶’이란 나의 작은 선택, 선택이 모여서 하나의 궤도를 이루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이러한 작은 깨달음이지만, “인생은 B(bri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말한 사르트르의 말이 나의 깨달음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장을 덮은 후, 카뮈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 혼란스럽고 어려웠으나, 고민하고, 고민한다면 조금이나마 그 해답에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존재란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지 혼란 속에 부딪힌 이들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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